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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생각

나의 20대 이야기 첫번째. 학창시절 이야기

30대의 첫해에 20대를 반추해보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과연 이런글을 누가 읽을까 싶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마음에서 더 나아가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에서 인생의 1/3 가량을 달려온 이때쯤 한번 이러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었어요. 나중에 나의 아들에게 딸에게(결혼은 할 수 있을지?) 이야기 해주기 전에 
조금이나마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었어요

저는 대전에서 대학교를 나왔어요. 병원경영을 전공하였답니다. 대학교를 입학하고 나서 별다른 목표는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가고 싶던 대학은 아니였기 때문에요.. 원래는 군인이 되고 싶었답니다. 군인에 대한 꿈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시절을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제 블로그니까.. 제 맘대로.. 생각의 흐름대로.. 하겠슴돠..ㅎㅎ;;)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이였어요. 나고 자란 고향은 천안은.. 특이하게 고등학교 비평준화된 지역이여서 중학교 3학년 동안의 내신을 바탕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성적은 전교 60등 정도 천안의 명문(?)인 천안고 (원래 자기 지역 이름 들어간 고등학교가 명문인거 아시죠...?? ㅎㅎ)에 1년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됩니다.

저는 제가 공부좀 하는 줄 알았어요.. 일년 가량 학교 다니고 나니 지금까지 제가 했던 공부량은 저희 반의 모든 아이들이 하고 있더라구요... 다들 각자 고등학교에서 공부 조금씩 하던 아이들이였으니까요 ㅎㅎ

일년이 지나고 나서 성적을 확인해보니 전교 120등? 정도 하였을 꺼에요.. 반이 12개 정도였으니까 반에서 10등 11등 정도 하던 거였죠? 중학교 시절에는 반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들었던 아이가 고등학교 들어가니 모든 손가락을 더한것보다 많은 등수를 받으니.. 자극과 충격을 받았어요. 이렇게 가다가는 인서울도 못들어 가겠구나.. 지방대 가면 인생 망한다던데.. (이때는 아마 지잡대란 말은 없었을꺼에요.. 근데 비스무리한 느낌은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을 자극시키기 위한 많은 충격장치가 마련되어있었어요. 일단 청마반이라고 전교 30등까지의 학생들을 모아서 특별 관리하는 반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을 위해서는 특별히 기숙사도 마련해주고 독서실같은 곳도 학교 한편에 마련해줘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환경을 마련해주었어요. 부럽기도 하였고.. 저기 꼭 들어가고 싶었는데.. 항상 들어가고만 싶었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원하긴 했지만 별다른 노력은 안했던 것 같아요.. 아니 노력은 했는데 제대로 된 노력은 안했던 것 같아요 그저 책상에 오래 앉아있으면 공부하는 줄 알았거든요...

두번째 충격장치는 연세대학교 견학이였어요. 학교에서 연세대학교로 견학을 시켜줘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좋은 대학을 와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넌지시 설명해주는 시스템이 있었어요.. 머리가 크고는 처음으로 서울에 상경해서 연세대학교를 견학하고 이렇게 대학이 클 수 있다니 하면서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도 이런 학교에 다니고 싶단 생각을 하면서 지냈어요.. 

이때부터 나의 목표는 연세대다 하면서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이때는 제가 노력하면 연세대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1학년 마치고 전교 120등했던 성적이.. 2학년을 마치고 나서는 전교 60등 정도까지 올랐던 것 같아요. 이때 마지막 모의고사를 갑자기 잘봐서(아마도 실제 실력은 아니고 운이였던 것 같아요.. 특이하게 학교에서 성적을 계산할 때 내신과 모의고사 점수를 합산해서 등수를 매겼습니다.) 

그래도 저의 장점은 성실함이었어요. 매일 아침에 가장 먼저 교실에 도착해서 언어 비문학 문제를 3개씩 풀던 기억이있으니까요.. 이 성실이 저의 삶에 큰 밑거름이 됩니다.

그리고 이때에 저의 목표가 하나 생기게 되는데 해군사관학교 선배님들이 학교에 오셔서 자신의 학교를 자랑하는 시간을 가진거에요.. 제복에.. 절도있는 동작에.. 하.. 저는 사관학교에 가고 싶단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육사갈 성적은 안되고.. 공사갈 성적도 안되고.. 해사는 어떻게 시험 잘 보면.. 비빌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3학년이 되어서 고3수험생이 됩니다. 이때 처음에는 청마2반에 들어가게 되어요. 앞서 청마반에 대해서 설명드렸죠?? 3학년이 되고나서는 청마반에 30명을 더 뽑아서 청마2반을 만듭니다. 처음에는 공부하는 장소에 이름까지 붙여주고..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토요일에도 나와서 출석체크하고... 등등..

시간이 흘러 고3수험을 시작하고 제가 목표하던 사관학교 시험보던 날이 되었어요. 학교에서 차를 대여해서 대전에있는 시험장까지 우리를 날라주었습니다. 거기서 시험을 보는데.. 너무 어려운 거에요.. 시험을 끝마치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떨어졌구나..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엄청난 실패감이 나를 엄습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렸어요.. 다 포기해버린거죠.. 공부도 대충 자리에 앉아있고... 부모님이 인강들으라고 사주신 pmp에 자연vs인간(엄마 미안해 ㅠㅠ) 넣어다니면서 독서실에서 보고... 성적은 계속 떨어졌어요... 청마반도 탈락하고....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시기였죠..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하는 걸 본 아버지께서는 인생에는 플랜b가 필요하다는 말씀도 해주시면서.. 저를 다독여주셨어요.. 다독여 주셨다기보다 그땐 다그쳤던것 같은데.. ㅎㅎ 반항심 깊었던 어린마음에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어요...

이때 삶에 대해서 한번 돌아보자면.. 공부도 못하는건 아니였고.. 부모님도 제가 하고 싶은것는 다 하게 해주었어요.. 제가 어느 학원에 가고싶다고 하면 등록시켜주고.. 등록시킨 학원에서 자격증시험, 준비하는 시험마다 합격하고 좋은 성적받아오니까 우쭈쭈 우쭈쭈해주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높지 않은 목표들이였어요..) 그러면서 온실속 화초로 자라온거죠.. 지금까지 이뤄온 목표는 설렁설렁 그저 맞춰진 틀에 순응하다보면 이뤄낼 수 있는 목표들.. 한계를 극복하고 나자신을 몰아치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 저에게 원하는 목표를 못이룬 경험은 너무나도 뼈아팠고 극복하기 힘들었어요

수능은.. 그냥 그렇게 보았어요 아주 평범하게 문과 평균 3등급.. 정말 3이였어요.. 언수외 3/3/3 사회문화3.. 또 하나는 기억이 안나네요... 일본어 2였나..? 정말,,, 평범한 실력이네요 ㅎㅎ..;;

문과 평균 3등급이면 인서울은 힘들어요 충남 지거국인 충남대도 낮은 과밖에 못갈꺼에요.. (당시 성적으로 계산해보니 농업과? 문헌정보학과? 이런곳은 지원 가능하더군요..)

그리고 또 하나 생각했던 방향이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교차지원해볼까란 생각도 가지고 있었어요..
여러서부터 컴퓨터를 진짜 좋아했거든요.. 하지만..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란 걱정..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인해 안전 빵을 선택하게됩니다. (저는 여기서 제가 한기대에 컴공에 입학하게 되었으면 좀 더 나은 개발자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에는 성실하게 임하거든요..!) 

눈을 돌려 좀 더 낮은 과에 지원하였어요.. 대전에 건양대학교라고 의료/보건이 강점인 대학교의 병원관리학과에 지원하게 되었어요. 병원에 대한 다양한 과목을 배우고 원무과, 의무기록사, 보험사 등 다양한 곳으로 진로를 정할 수 있는 곳이였어요.

어머니가 보건직 공무원이여서 어렸을때부터 의료/보건쪽 일을 많이 보고 배웠어요. 그리고 병원에서 일하는 것도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더욱이 취업률이 100퍼센트에 가깝다는 팜플렛을 보고.. 여기가면 배곯지 않겠단 생각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넉넉한 성적으로 지원했고 무난하게 대학에 합격하게 됩니다.

이렇게 대학교 진학까지의 이야기는 끝!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아니 저에게 당부하고 싶은말은..
"좀 더 도전해볼껄! 이란 후회를 하지 말자 입니다."

글을 쓰면서 인생을 돌아보니 좀 더 도전해볼껄.. 이라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항상 안일한 삶을 선택해온 것 같아요.. 이게 어느 순간 관성처럼 작용하더군요..
다른 친구들의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 부러움을 느끼고 나도 저렇게 행동해야지 하는데.. 막상 그러한 순간이 오면 포기해버리는 저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남은 삶.. 좀 더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나중에 제가 아이를 교육한다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절제하고 한계를 돌파하는 방법을 어떻게든 가르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제가 그러한 경험이 있어야 겠죠? 

이러한 삶의 태도는 어려서부터 만들어 진다고 생각해요.
어려서부터 이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힘들면 하지말어..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피해의식이 많고 엄살을 많이 부리던 아이였던것 같아요.
부모님께서 저를 보시고 그렇게 힘들면.. 하지말라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그 하나의 예가 태권도 도장이였는데 매일 다니다 그만두고 다니다 그만두고... 제가 가진 가장 높은 띠는 초록띠? 정도였습니다.. 왜 그렇게 포기가 쉬었던 걸까요??
하지만 돌아보면 그렇게 포기했던 한순간 한순간들이 나약한 마음가짐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부모님을 욕하려는게 아니고 저를 돌아보고 싶어요..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늦었다 생각할때가 가장 빠른 순간입니다. 여러분도 도전해보세요!